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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니발리즘. 식인풍습이라 불리는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행위.
예전 탐험의 시대에 유럽의 탐험가들이 보고한 미개한 인종들이 자행하는 행위에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이 판타지에 환호하고 매료되듯 당시의 유럽사람들은 매료되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인식의 범위 밖에 존재하는 무언가에 대한 호기심과 의문.
일사에서 볼 수 없는 특이점은 때론 매료적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식인풍습에 대하여 말하고 있기도 하지만 관습과 규범으로 이를 금하고 있다. 속히 말해 이성적인 판단으로 식인풍습을 규탄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쉽게 표현하면 사람이 무언가를 섭취하는 행위에는 식욕이 우선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것은 무언가를 먹음으로해서 자신의 에너지원을 공급하고 나아가서는 살아가는데 가장 기초적인 행위가 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무언가를 섭취하는 행위를 식인풍습으로 돌려보자.
사람이 자신과 닮은 사람을 사냥한다. 그리고는 절단을 내어 불에 굽거나 또는 날것으로 섭취한다. 이러한 모습은 일반적으로 판단할 때 하염 없이 거부감을 주기 마련이다. 도리어 사람이 사람을 잡아 먹기보다는 소나 돼지 닭과 같은 짐승을 잡아먹는 다는 것이 덜한 거부반응을 줄지도 모른다.(물론 동물들 자체에도 소중한 생명이 있고 이를 거부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식용풍습은 저마다의 정당한 이유 속에서 행해졌으며 당시 탐험의 시대처럼 사람을 단순히 먹기위한 식용품으로 사냥을 한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에 대한 근거로 몇가지를 들겠다.
서부 개척시대의 미국. 동부에서 풍요를 찾아 미국 서부를 가로질러가는 가족이 있었다. 그들은 다른 이들 처럼 마차에 간단한 짐을 꾸리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때에 갑작스레 산맥을 넘기 직전 겨울이란 계절을 직면하게 된다.
2미터가 넘게 내리는 폭설 앞에 사람들은 발이 묶인다. 당시 마차안에는 특별히 저장된 식량따위는 없었다. 이동 중에 버팔로나 사슴등을 사냥하여 그날 식량은 그날 그날 얻는 그들에게 있어 갑작스러운 겨울의 폭설은 큰 위기였다. 그러한 과정에서 마차를 끌던 말들이 그다음에는 애완동물이 사람들에게 잡아먹혔다. 하지만 이내 그러한 먹을거리도 떨어지고 젊은 몇 사람들은 먹을 것을 찾기 위하여 밖으로 향한다. 하지만 이미 동물들은 매서운 겨울을 피해 따뜻한 남쪽으로 이동한지 오래되었다. 그들은 아무런 식량도 없는 상황에서 선택을 해야했다. 이미 매서운 한파에 동사한 동료의 시신을 먹어치울 것인가? 아니면 그저 굶주림에 죽어갈 것인가? 그들은 죽은 동료를 먹기 시작했으며 나중에는 동행하던 인디언 2명을 살해하여 먹기로 계획한다. 그들에게 있어 식인행위는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다. 겨울이 가고 그들이 캘리포니아에 도착하였을 때 이러한 사실을 안 많은 사람들은 경악을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들에 대하여 비난을 하지 않았다. 생명의 갈림길 극한의 상황에서 만약 자신이 그러한 상황에 처한다면 자신들 역시 식인행위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식인 행위란 단순히 식량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잡아먹기보다는 자신이 살아남기위한 불가피한 선택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다른 예로 문화대혁명 중국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이 경우는 집단적 광기의 경우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생명의 갈림길이 아닌 집단적 최면상태에서 행해진 잔혹한 행위다. 문화대혁명당시 이에 어긋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과정에서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죽은 시체를 토막내어 먹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와 유사한 과정은 전쟁이란 극한 상황에서도 보여지는데 집단의 적을 물리치는데 있었서 단순한 승리 이상의 달성을 위해서는 적의 존재 자체를 세상에서 지워버리는 행위야 말로 가장 큰 승리임을 착각 또는 인식하는 경우이다. 인도네시아의 섬에 사는 소수민족중 일부의 경우 적 집단과의 전투 과정에서 살해한 적을 먹는데 이는 집단의 단결성을 보여주는 한편 적에게 심한 공포심을 심어주기 마련이다. 이처럼 단순히 식용이 아닌 집단적 광기 상태에서 또는 목적 하에서 식인 풍습이 나타난다.
긴 말을 없에고 쉽게 생각하면 다른 단백질 성분을 섭취할 수 있는 식량이 있는 상황에서 어느 누가 자신과 닮은 사람을 잡아먹을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그 답이 보인다 할 수 있다. 또한 식인 풍습은 단순히 사람을 식량으로 먹는게 아닌 저마다의 문화에서 그 행위 자체에 더욱 깊은 의미가 있으며 이를 이해하고 나서야 식인풍습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예전 탐험의 시대에 유럽의 탐험가들이 보고한 미개한 인종들이 자행하는 행위에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이 판타지에 환호하고 매료되듯 당시의 유럽사람들은 매료되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인식의 범위 밖에 존재하는 무언가에 대한 호기심과 의문.
일사에서 볼 수 없는 특이점은 때론 매료적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식인풍습에 대하여 말하고 있기도 하지만 관습과 규범으로 이를 금하고 있다. 속히 말해 이성적인 판단으로 식인풍습을 규탄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쉽게 표현하면 사람이 무언가를 섭취하는 행위에는 식욕이 우선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것은 무언가를 먹음으로해서 자신의 에너지원을 공급하고 나아가서는 살아가는데 가장 기초적인 행위가 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무언가를 섭취하는 행위를 식인풍습으로 돌려보자.
사람이 자신과 닮은 사람을 사냥한다. 그리고는 절단을 내어 불에 굽거나 또는 날것으로 섭취한다. 이러한 모습은 일반적으로 판단할 때 하염 없이 거부감을 주기 마련이다. 도리어 사람이 사람을 잡아 먹기보다는 소나 돼지 닭과 같은 짐승을 잡아먹는 다는 것이 덜한 거부반응을 줄지도 모른다.(물론 동물들 자체에도 소중한 생명이 있고 이를 거부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식용풍습은 저마다의 정당한 이유 속에서 행해졌으며 당시 탐험의 시대처럼 사람을 단순히 먹기위한 식용품으로 사냥을 한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에 대한 근거로 몇가지를 들겠다.
서부 개척시대의 미국. 동부에서 풍요를 찾아 미국 서부를 가로질러가는 가족이 있었다. 그들은 다른 이들 처럼 마차에 간단한 짐을 꾸리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때에 갑작스레 산맥을 넘기 직전 겨울이란 계절을 직면하게 된다.
2미터가 넘게 내리는 폭설 앞에 사람들은 발이 묶인다. 당시 마차안에는 특별히 저장된 식량따위는 없었다. 이동 중에 버팔로나 사슴등을 사냥하여 그날 식량은 그날 그날 얻는 그들에게 있어 갑작스러운 겨울의 폭설은 큰 위기였다. 그러한 과정에서 마차를 끌던 말들이 그다음에는 애완동물이 사람들에게 잡아먹혔다. 하지만 이내 그러한 먹을거리도 떨어지고 젊은 몇 사람들은 먹을 것을 찾기 위하여 밖으로 향한다. 하지만 이미 동물들은 매서운 겨울을 피해 따뜻한 남쪽으로 이동한지 오래되었다. 그들은 아무런 식량도 없는 상황에서 선택을 해야했다. 이미 매서운 한파에 동사한 동료의 시신을 먹어치울 것인가? 아니면 그저 굶주림에 죽어갈 것인가? 그들은 죽은 동료를 먹기 시작했으며 나중에는 동행하던 인디언 2명을 살해하여 먹기로 계획한다. 그들에게 있어 식인행위는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다. 겨울이 가고 그들이 캘리포니아에 도착하였을 때 이러한 사실을 안 많은 사람들은 경악을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들에 대하여 비난을 하지 않았다. 생명의 갈림길 극한의 상황에서 만약 자신이 그러한 상황에 처한다면 자신들 역시 식인행위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식인 행위란 단순히 식량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잡아먹기보다는 자신이 살아남기위한 불가피한 선택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다른 예로 문화대혁명 중국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이 경우는 집단적 광기의 경우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생명의 갈림길이 아닌 집단적 최면상태에서 행해진 잔혹한 행위다. 문화대혁명당시 이에 어긋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과정에서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죽은 시체를 토막내어 먹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와 유사한 과정은 전쟁이란 극한 상황에서도 보여지는데 집단의 적을 물리치는데 있었서 단순한 승리 이상의 달성을 위해서는 적의 존재 자체를 세상에서 지워버리는 행위야 말로 가장 큰 승리임을 착각 또는 인식하는 경우이다. 인도네시아의 섬에 사는 소수민족중 일부의 경우 적 집단과의 전투 과정에서 살해한 적을 먹는데 이는 집단의 단결성을 보여주는 한편 적에게 심한 공포심을 심어주기 마련이다. 이처럼 단순히 식용이 아닌 집단적 광기 상태에서 또는 목적 하에서 식인 풍습이 나타난다.
긴 말을 없에고 쉽게 생각하면 다른 단백질 성분을 섭취할 수 있는 식량이 있는 상황에서 어느 누가 자신과 닮은 사람을 잡아먹을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그 답이 보인다 할 수 있다. 또한 식인 풍습은 단순히 사람을 식량으로 먹는게 아닌 저마다의 문화에서 그 행위 자체에 더욱 깊은 의미가 있으며 이를 이해하고 나서야 식인풍습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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